23 | 먼 미래, 지구의 땅은 지진과 이유 없는 지각 변동으로 1개의 대륙이 된다. 잇따른 자연 재해로 전쟁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인류는 오랜 발전을 뒤로 하고 결국 퇴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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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인류는 발전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고 마침내 그림자 세계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똑같은 세계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자나 현실세계의 몇몇 사람들은 서로의 세계를 오고갈 수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옴브라’로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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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옴브라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태어나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들은 전체 인구 중 300명당 1명꼴로 태어났고 인식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언제부터인가 익숙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실과 그림자를 오고가며 발전을 도왔고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뛰어나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그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신과 같은 경외심을 가지고 존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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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그들은 모여서 현실세계에 ‘레그노’라는 이름의 강대한 회사를 만들고 경제를 지배했으며 그림자 세계에는 왕국을 만들어 통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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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옴브라들은 회사와 그림자 세계를 다스릴, 단 한명의 리더만을 세웠고 그 리더는 오직 ‘리어’가의 혈통이여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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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31대 옴브라들의 왕이자, 레그노 기업의 회장이며 그림자 세계의 왕인 브루노 리어는 노쇠하여 더 이상 그림자 나라와 기업을 이끌어 갈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딸들을 시험하여 가장 왕 자리에 적합한 자에게 재산과 왕권을 주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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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그의 첫 번째 자식인 거너릴 왕자는 욕심과 허영심이 많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몰라 왕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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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두 번째 자식인 헬리아 공주는 겁이 많고 결단력이 부족하여 역시 왕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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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세 번째 자식이자, 막내인 에드윈 왕자는 뛰어난 지략과 배려로 왕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시험을 통과한다. 하지만 그는 연약한 성격 탓에 왕의 후계자가 된다는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왕국을 뛰쳐나와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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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왕은 크게 실망하여 에드윈을 제외한 자식들, 거너릴과 헬리아에게 왕의 권력과 레그노 기업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에드윈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왕은 그에게 힘을 주는 대신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밀스럽고 강력한 힘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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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브루노 왕은 어리석게도 왕의 자리는 유지하며 세상의 무게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그의 선택은 또 다른 사건을 부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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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내 눈앞에 너무나도 가까이 있는 에드윈을 보고 식겁했다. 나는 분명히 바닥에 앉아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서 잤던 내가 어떻게 그의 침대에 누워있단 말인가? 그것도 내가 앉아있던 곳의 반대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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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내가 조금 움직이자 에드윈이 자면서 인상을 찡그려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에드윈 때문에 더 이상 잠을 자지도 못하는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편하게 가만히 누워있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드윈을 바라보는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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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그의 머리카락은 여자인 내가 봐도 질투가 날정도로 탐스러웠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윤기가 나는지 그가 깨면 물어봐야겠다. 그의 잠자는 얼굴은……내가 왜 이런 것을 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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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나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더 놀랐다. 심장은 그를 보고 뛰었고 이상했다. 그가 눈을 꿈틀거리자 나는 즉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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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그는 잠시 움직이더니 일어났다. 그가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은근슬쩍 눈을 뜨려고 했다. 그런데 내 눈보다 먼저 그의 손가락이 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얼굴에 닿는 따스한 촉감에 내 뱃속은 간지러웠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며 자는 척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그의 손길에 다른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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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자는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되기 전에 에드윈은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은 후 미련을 남기며 내 뺨에서 손을 떼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방안에 있는 화장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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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나는 눈을 뜨고 일어났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얼굴로 열이 모여 더웠다. 거울은 보지 않았지만 분명히 내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을 것이었다. 아직도 볼에서 그의 온기가 느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의 온기가 내 뱃속을 간지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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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나는 그가 화장실에서 나오기 전에 내 방으로 가기 위해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에드윈은 얼마나 빠르게 씻고 나왔는지 하필 그 순간에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머리카락에서 수정처럼 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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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하, 하. 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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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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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어, 안녕. 잘 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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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그가 물었다. 그는 나의 어색함에 의문점을 가지는 것 같았지만 평소처럼 대해주었다. 평소와 다른 건 나의 심장과 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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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 “응. 그런데 내가 어떻게 침대 위에 누워있는지 알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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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나는 당황하여 손을 허공에서 무작정 저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 할 것이다. 아.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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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어, 내가 너를 내 침대 위에 눕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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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수건으로 그의 머리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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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 “왜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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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 “네가 바닥에서 불편하게 자고 있는데, 네 방문이 잠겨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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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 그는 역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어깨까지 으쓱이며 별일 아니라는 듯이 굴었다. 나도 그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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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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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 그가 불렀다. 나는 그의 침대에서 빠져나오다 말고 들리는 내 이름에 그대로 정지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에드윈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동자에 심장이 또 뛰었다. 내가 아니라 심장이 미친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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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 “내가 어제 생각 해봤는데 이제 너는 그만 베르디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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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 그가 말했다. 나의 심장은 조금 느려진 속도로 뛰었고 나는 그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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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 “이미 다녀왔다고 하면 믿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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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 내가 물었다. 에드윈은 잠시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의 그런 표정도 너무 멋졌다. 생각해 보니 내 눈도 미친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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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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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 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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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 “어젯밤에… 그냥 아버지와 언니에게 내가 브루노 왕을 찾으려고 하니까 조심하라고 말했어. 내가 너의 최측근에서 너를 도와주게 되었으니 내 신분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나 잘못했나? 너는 내가 완전히 베르디로 돌아가길 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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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 나는 일부로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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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아니, 아니,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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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 에드윈이 급히 말했다. 그는 내 표정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를 보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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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왕을 찾는다고 했지만 나와 너 그리고 김수지 만으로는 찾지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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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 내 목소리는 지나치게 맑고 밝았다. 평소의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진지한 대화의 주제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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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 “먼저 켄트씨와 대화를 해보려고 해. 나는 그와 한배를 타게 되었으니, 내 계획과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 하지만 그들과 같이 행동하는 건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그쪽은 사람이 너무 많고 그들을 이미 거너릴과 빌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아버지를 찾으면 위험해 질 것 같거든. 너는 김수지에게 임남매와 진희, 황백 그리고 이승훈을 우리 집으로 모아달라고 전화해줘. 그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도와달라고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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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 “알겠어. 확실히 켄트씨와 우리가 같이 행동하지 않는 게 더 찾기 쉬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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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알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펄쩍 펄쩍 뛰면서) 그의 방을 나왔다. 심장은 아직도 미친 듯이 뛰었다. 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방문 고리를 돌렸다. 그런데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고장이 났다는 에드윈의 말이 사실이었다. 바람을 이용해 억지로 문을 열고 그대로 침대 위에 점프 하듯이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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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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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 나는 바람에게 어딘가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바람은 굳이 핸드폰을 나에게로 가져다주는 대신 바로 김수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이어폰에서 울렸다. 한참의 연결음 끝에 자다 일어난 것 같은 거친 김수지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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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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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 “수지야. 오늘 임남매랑 승훈이 진희 그리고 백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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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 나는 그의 이어폰이 바이러스에 침입 당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에드윈의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켄트씨가 심어 놓은 바이러스 이지만 다른 사람의 바이러스에 침입 당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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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 김수지는 자다 일어나서 그런지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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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 “오~ 알겠어. 3시쯤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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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 그는 뒤 늦게 이해하고 말했다. 그가 다급히 움직이는 소리가 그대로 이어폰에 전해졌고 이어폰의 연결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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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 나는 침대에 누워서 손을 심장 위에 올렸다. 심장은 이제 서서히 본래의 속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단지 오늘 아침의 심장은 그저 놀랬을 뿐이었다. 다른 건 없었다. 6년 동안 함께 살면서 처음으로 그렇게 가까이 있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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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내 심장이 가까스로 평소처럼 돌아오자,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나갔다. 에드윈은 아직 그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릇과 시리얼 그리고 우유를 준비한 후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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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 내 그릇에 담긴 시리얼이 사라질 무렵 에드윈이 깔끔하게 청남방과 검은 바지를 입고 나왔다. 그는 검은색 외투를 한손으로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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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 “유라. 밖에서 켄트씨를 만나고 올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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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 그가 부엌으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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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 “다녀와. 그리고 오늘 3시에 김수지랑 친구들이 온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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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 “그때까지는 들어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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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 그는 환한 미소를 날리고 집을 나갔다. 나는 또 다시 뛰기 시작하는 심장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나는 지금 에드윈의 행동 하나, 하나 마다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내가 진정으로 미치기라도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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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 나는 식사를 끝내고 그릇들을 설거지 통 안에 넣은 후 식탁에 앉아서 끙끙거리며 정말로 내가 미쳤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방금 나간 에드윈이 초인종을 눌렀을 리 없었으니 아마도 김수지 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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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 나는 김수지에게 굳이 빨리 문을 열어 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느릿느릿 걸으며 인터폰으로 갔다. 그런데 인터폰 화면에는 김수지가 아닌 남궁진희와 황백이 서 있었다. 나는 서둘러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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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 그들을 아주 오래전에 들어와도 되는 사람으로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보안 장치가 울리지 않은 것 같았다.(내 생각에는 그 장치는 이미 고장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우리 집 주소를 말해준 적이 없었고 그들은 김수지와 함께 3시에 오기로 되어있었었다. 그리고 지금 김수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어떻게 우리 집을 알고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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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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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 그들이 들어오면서 밝게 인사했다. 김수지와 함께 오지 않은 그들이 이상했지만 남궁진희의 천리안이라면 우리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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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 “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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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 부엌으로 안내했다. 내가 방금 전에 그곳에 앉아있다 나왔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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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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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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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 나는 식탁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서 남궁진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황백은 의자에 앉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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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 나는 앉으려고 했던 어정쩡한 자세를 풀고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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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 “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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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 진희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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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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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 과연 내가 뭘 물어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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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 “내가 여기에 어떻게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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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 “그거야 네가 천리안이니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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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 “여기에 왜 왔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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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 “어, 음……. 김수지가 에드윈과 나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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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 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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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 “너는 참 속편하게 사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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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 황백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기분이 나빠야 할지, 좋아야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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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 “우리는 김수지에게 이야기를 듣지도 않았고 천리안으로 네가 있는 곳을 보지도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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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 남궁진희가 설명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빼고 앉았다. 나와 황백도 따라 의자에 앉았다. 나는 남궁진희가 앉은 쪽으로 최대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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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 “그럼 어떻게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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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 내 머릿속은 아주 강력하게 꼬였다. 본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 아닌데 요즘 따라 많은 이야기들 때문에 머리가 따라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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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 “내 능력은 네가 알고 있는 천리안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거야.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와 친밀도가 높은 사람이 미래에 경험할 일을 미리 꿈속에서 봐. 즉, 나는 너와 에드윈 그리고 김수지가 나와 황백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미리 본거고 김수지와 함께 내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봤다는 말이야. 그리고 이 능력 때문에 6년 전에 내가 그런 식으로 너와 만난 거야. 미래를 보는 능력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동시에 싫어하는 능력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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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 남궁진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6년 전의 기억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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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 6년 전 내가 에드윈이랑 만나고 막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복부에서 피를 흘리며 더러운 골목에 누워있던 그녀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그녀를 업고 집으로 왔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녀를 구해준 이유가 그녀의 예쁜 얼굴에 끌려서라고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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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 그 뒤에 김수지의 도움을 받아 그녀에게 신분을 주었고 함께 고등학교에 다녔었다.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집과 그때 내가 살았던 집이 다른 곳이기 때문에 그녀가 지금 내 집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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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 미래를 보는 능력 이라……. 그 어떤 능력들 중 가장 무서운 능력 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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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 “미래를 보는 능력 때문에 네가 쫓기고 있는 거구나. 내가 도망치는 이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네. 나는 그냥 어리광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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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 내가 가출을 한 이유를 그녀가 도망치는 이유에 비교한다면 너무 볼품없었고 창피했다. 아. 정말 나는 왜 가출을 한 것일까? 아니지, 나는 지금도 가출 중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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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 “사람마다 중요한 게 다른 것처럼 우리가 도망치는 이유도 다른 거지. 그리고 너의 어리광 때문에 나는 살 수 있었어. 네가 어리광을 피워주지 않았으면 이미 나는 저승으로 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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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 | 그녀는 나를 위로해 주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씩 웃으며 식탁 위에 깍지 낀 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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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 “이번 일은 네 정체를 들킬 지도 몰라. 위험하고 정말로 위험해. 그런데도 우리를 도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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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 나는 그녀가 이미 나와 에드윈이 하려는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앞, 뒤 다 자르고 본론만 물었다. 그들이 나의 제안을 거절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대답을 기다리며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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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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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 황백이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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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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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 “아니. 내가 더 고마워. 그동안 나는 너에게 나를 살려준 은혜도 값을 기회가 없었어. 늦었지만 너에게 은혜를 값을 수 있게 해주어서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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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에게 해준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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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 우리는 자리를 옮겨 거실로 향했다. 그러자 황백은 그의 가방에서(나는 그가 가방을 메고 왔는지도 몰랐었다.) 여러 번 접힌 투명한 종이를 꺼냈다. 그는 필름 같이 얇고 투명한 종이를 꺼내더니 펼쳤다. 주먹만 하던 크기의 종이는 순식간에 내키를 훌쩍 뛰어넘는 크기가 되었다. 그는 그것을 tv 위에 붙였다. 풀이 없는데도 종이는 아주 잘 붙어서 공중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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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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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 나는 그저 투명하기 만한 종이를 바라보았다. 이리보고 반대로 보고 다시 봐도 아무것도 없는 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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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 “지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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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 황백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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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 “너나 진희나 에드윈이나 이승훈 같은 머리가 아주 뛰어난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나 임남매는 머리가 둔해서 어디가 도버 숲이고 어디가 마을인지 전혀 모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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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이는 그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거기까지 나도 배려할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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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 황백은 종이 위를 손으로 만졌다. 그러자, 도버숲과 도버숲 근처의 마을 지도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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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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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 내가 감탄했다. 지도는 실제 모양처럼 아주 정확했다. 그가 손으로 코딜리어 광장과 붙어있는 라리마 마을을 손으로 눌렀다. 그러자 라리마 마을이 실제 모습 그대로 확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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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 “오! 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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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 내가 박수까지 치며 감탄사를 연발하자, 황백의 입 꼬리가 쭉쭉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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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 “이런 날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준비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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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 황백이 수줍게 말했다. 그는 나에게 말하면서 남궁진희를 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알 수 없는 시선을 교환했다. 남궁진희가 황백한테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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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 잠시 후 끝이 없는 지도의 능력에 계속 감탄하고 있을 쯤, 에드윈이 돌아왔다. 그는 그가 모르는 사이에 집에 들어온 황백과 남궁진희를 의문스럽게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남궁진희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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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 “왜 안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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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 내가 물었다. 에드윈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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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 | “우리 형이 남궁진희를 쫓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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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 그가 암울하게 말했다. 거너릴이 어디까지 갈지 그 끝이 참으로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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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 3시가 되어가자 에드윈과 황백은 지도를 이리저리 만지며 서로 장난치고 놀았다. 덕분에 애꿎은 지도는 계속해서 화면을 바꿔야만 했었다. 나와 남궁진희는 소파에 여유롭게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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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 “백이가 정말로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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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 | 나는 남궁진희를 바라보는 황백의 눈빛을 보고 더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한없는 애정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특별한 그녀가 그의 눈길 속에서 더 특별해 졌다. 그러자 남궁진희는 잠시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답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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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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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 “그냥 너를 보는 눈빛 그 자체에서 사랑이 느껴져. 그런데 네가 나를 버리고 그랑 함께 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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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 | 나는 매우 유감이라는 듯이 말하며 그녀를 놀렸다. 그녀의 두 뺨에 붉은 홍초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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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 | “그냥……. 그가 지켜주겠다고 했었고……도망자 셋이 붙어있으면 더 쉽게 발각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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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어쩐지 뒤에 붙은 이유는 그녀가 마음을 결정할 때 그다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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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 | “부럽다. 그런 사람도 있고. 나의 그분은 어디에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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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 나는 소파 위로 발을 올렸다. 내 친구도 사귀는데 나만 20년 동안 괜찮은 남자친구 한명도 없으니……. 모태 솔로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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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 “너도 곧 생길거야. 너의 그분은 아주 가까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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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 남궁진희가 엄마같이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한쪽 눈썹을 올리고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때마침 초인종이 울리고 바로 문이 열리며 김수지와 임남매 그리고 이승훈이 들어왔다. 그들은 우리 집을 보더니 감탄사부터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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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 “우리 집 보다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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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 “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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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 기분 좋은 감탄사 뒤에 들리는 끔찍하게 애교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임지영은 집보다도 에드윈이 먼저 보이는지 그에게 달라붙었다. 깊은 한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왔다. 속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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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 “여기 앉아. 김수지. 너는 차를 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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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 나는 이승훈과 임지훈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김수지에게는 쌀쌀맞게 말했다. 나의 명령에 김수지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의외로 순순히 주방으로 가서 녹차를 타왔다. 임지훈의 중재로 임지영은 에드윈과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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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 | 나와 에드윈은 아이들 모두를 겨우 소파에 앉혔고 그들의 앞에는 찻잔이 하나씩 있었다. 나와 에드윈은 나란히 앉아있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 뜨거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임지영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말을 시작하라는 신호를 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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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 “고마워. 지영아. 어……. 나는 브루노 리어의 셋째 아들이자 그가 결정한 유일한 후계자야. 그리고 코딜리어 광장에서 너희들이 들었던 말의 80%는 진실이지. 너희들이 놀란 거 알아. 처음부터 내가 왕자라고 말하지 않고 속여서 미안해. 그동안 내 정체를 숨긴 이유는……내가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나왔기 때문에 다시는 왕자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지금 뒤늦게 내가 왕자라는 것을 너희들에게 말해주는 건 내가 아무래도 왕자로 돌아가야 할 것 같기 때문이야. 지금 그림자 세계는 나의 형과 누나가 아버지를 상대로 왕권 다툼을 하고 있어. 그 싸움 중 아버지가 사라지셨고 나는 그분을 찾고 싶어. 그를 찾으려면 너희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해. 그리고 이 일은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위험할 거야. 재미난 모험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할 수도 있는 일이야. 적은 인원수로 그림자세계의 실질적 왕이 된 거너릴과 헬리아와 1000명이 넘는 그들의 군대와도 대적하게 될 테니까. 그런데도 나를 도와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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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 에드윈이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브루노 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항상 옆에 있어서 익숙한 에드윈의 일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거너릴과 헬리아와 빌리는 그의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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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 설마 에드윈을 죽이기라도 할까?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은 자식 된 도리로 당연히 부모에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사라졌는데 찾는 건 당연하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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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 나는 나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황백과 남궁진희는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고 이승훈과 임지훈은 복잡해 보였다. 그런데 임지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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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 “좋아. 도와줄게. 어차피 나는 고아여서 지훈이 빼고는 가족도 없어서 위험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 대신 조건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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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 임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에드윈의 무릎 위에 앉았다. 나는 눈알을 굴렸다. 일어나서 소리를 빽 지르고 싶었지만 그와 그저 친구인 나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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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 | “나를 만날 때마다 키스 해줘. 그게 내 조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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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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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너무 고맙게도 임지훈이 대신 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도 임지영은 에드윈의 무릎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에드윈이 싫다고 말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발.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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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 “너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그런 말을 하면 싫어할 사람은 없어. 그 대신 나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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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 | 오! 저 자식. 임지영이 예쁘게 생겼다고 고새 넘어간 건가? 아침에 내 뺨을 손으로 만진 건 뭐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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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 “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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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 임지훈은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뒷목을 잡았다. 그런데 뒤이어 더 가관인 일이 벌어졌다. 임지영와 에드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키스를 했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나는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임지훈과 이승훈을 바라보았다. 남궁진희와 황백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김수지는 휘파람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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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 “너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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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 내 목소리는 열이 나는 속마음과는 다르게 너무 차분해서 말하는 내가 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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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 “저 꼴을 막기 위해 당연히 참여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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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 임지훈이 그들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계속 노려보고 있으면 그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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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 “나도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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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9 | “이승훈. 너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가족들이 있어. 에드윈이 친구이기 때문에 쉽게 결정 내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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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 남궁진희가 그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승훈은 가족이 없는(나는 가족들이 있지만 이미 그들에게 말을 해둔 상태이니 그 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들과는 다르게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그는 4명의 동생과 부모님 등 현재에서는 보기 힘든 대가족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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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 | “그때가 되면 알아서 빠질게. 하지만 지금은 너희들을 도와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사람은 종종 이런 모험도 해야 하는 거야. 왕자를 도와주다니… 완전 신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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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 그의 목소리에서는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는 열정이 느껴졌다. 그에게 고맙기는 한데 마음에 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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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 “나도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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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 “갈비뼈 부러지고 팔이 부러져야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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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 의외로 김수지가 그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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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 | 한편에 있는 에드윈과 임지영은 드디어 입술을 뗐다. 임지영은 에드윈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에드윈은 그녀에게 눈을 찡긋 이고 소파에서 일어나 지도로 다가갔다. 당연히 나의 혈압은 아주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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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 “브루노 왕은 거너릴의 습격을 받았고 그는 한 명의 충직한 기사님과 함께 사라졌어. 그들이 사라진 지점은 라리마 마을에 있는 도버 숲의 입구야. 그가 아직 숲에 있거나, 기사와 함께 근처의 마을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내 생각으로는 숲을 조사하는 그룹과 마을을 조사하는 그룹으로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았는데 우리를 도와 왕을 찾는 켄트씨가 왕을 따르던 기사 50분과 함께 숲을 조사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마을들은 거너릴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는 그들이 조사할 수 없으니 우리가 조사를 하고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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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 그는 몇몇 열등생들을 위해 지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 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실망한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매우 짜증이 났기 때문에 다리를 꼰 다음 팔짱을 끼고 차갑게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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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 “음… 그러면 굳이 두 그룹으로 인원을 나눌 필요는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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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 김수지가 말했다. 작전을 짤 때는 그는 항상 아주 좋은 머리 상태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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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 “왕의 성과 가장 떨어진 가넷. 페리도트. 제이드 마을은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는 에드윈이나, 승훈이 아니면 진희가 조사해주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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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 |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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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 “싫어. 나는 에드윈이랑 같이 행동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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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 “누나의 옆에는 항상 내가 있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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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 임남매가 고집스럽게 외쳤다. 아. 머리가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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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 “나랑 네가 라리마 마을을 조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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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 이승훈이 나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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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 “얼굴이 알려질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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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 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승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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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 “내가 승훈이랑 함께 라리마 마을을 조사할게. 네가 나의 진희와 함께 있어. 바람의 능력인 네가 그녀와 함께 있으면 안심이고, 그저 평범한 사람인 내가 승훈이랑 함께 있으면 절대적으로 의심받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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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 황백이 말했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위해서라도 확실하게 남궁진희를 지켜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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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 | “김수지. 너는 도버 숲 근처에 있는 모든 CCTV를 봐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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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 에드윈이 김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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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 “내 눈알이 뻑뻑해 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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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 김수지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그의 눈은 벌써부터 충혈이 되어 있었다. 그의 눈 건강이 위험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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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 “그리고 임 남매와 에드윈은 인원수가 많으니 가넷, 페리도트, 제이드, 펄 마을까지 조사해. 인원이 많기 때문에 주는 거야. 너희는 셋이서 다니잖아. 그리고 에드윈은 바람을 다룰 수 있어서 더 쉽게 정보를 수집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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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 나는 그들이 단체로 반박하려고 하자 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들 모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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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 | “그리고 그림자 세계로 들어가는 건 각자 다른 시간에 다른 곳에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뭐가 문제야, 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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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 임지영이 반박하려고 하자 나는 고개를 돌려 에드윈이 앉아있던 자리에 요염하게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무섭게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데 이가 저절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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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 | “불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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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 | 그녀가 새초롬하게 말했다. 에드윈은 팔짱을 끼고 우리를 보고만 있었다.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임지영을 좋아하나? 그녀에게 떽떽거리는 나를 노려보는 건가? 애당초 내가 왜 그의 생각과 감정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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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 “내일 10시쯤에 애깃 마을로 갈 건데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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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 | 나는 모든 생각을 지우고 남궁진희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브루노 왕을 찾는 계획에 집중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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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 “좋아. 그러면 백이는 9시쯤에 라리마로 가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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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 |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황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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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 “좋아. 하지만 너무 이르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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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 | 황백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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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 | “이르지는 않을 거야. 그때는 라리마 마을의 주민들이 그들의 일자리로 가기 위해서 움직일 시간이거든. 유동인구 수가 가장 많은 시간 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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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 김수지가 말했다. 그는 이미 철저하게 조사를 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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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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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 “너희들은 알아서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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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 나는 에드윈과 임남매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매정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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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 | “에드윈. 언제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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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 임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에 속이 뒤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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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 “오후 2시쯤에 가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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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 김수지가 에드윈을 대신해 말했다. 임지영은 김수지를 바라보면서 눈알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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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 “너한테 안 물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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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 “난 에드윈에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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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 김수지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김수지는 제일 좋은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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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 | 잠시 후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임지영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고 난리를 쳤다. 다행히 임지훈의 힘으로 강제로 끌고 나갔지만……. 이제 부터가 걱정이었다.) 나와 에드윈이 남게 되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왔다. 그냥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으면 임지영과 그의 키스가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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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 | 짜증을 내며 문을 닫자,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나는 일부로 발로 쿵쿵 거리는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발을 화장실 바닥에 디디는 순간 그만 나는 그대로 물기 있던 바닥에 미끄러지며 단단한 타일에 뒷머리를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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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 | 내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문 닫을 때보다 더 한 엄청난 소리가 울리고 진정으로 내 눈앞에 별이 보였다. 그리고 몇 초 뒤에 엄청난 통증이 전해졌다. 이 통증은 우주를 초월한 통증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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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 | “유라,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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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 | 에드윈이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멀리서 들렸다. 아파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내가 문은 닫았어도 잠그지는 않았는데 그가 들어오지 못하는 걸보니, 문이 또 고장이 나서 잠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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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 | “바람, 바람. 문 좀 열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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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 | 나는 머리를 붙잡고 말했다. 일어나려고 시도하던 중 더 머리가 아파서 그냥 누워있었다. 지금 움직이면 머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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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 | “유라.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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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 | 문이 열렸는지 에드윈이 화장실로 왔다. 그는 내가 박은 머리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가 손이 닿자, 더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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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 | “아, 아, 아, 아,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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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 | 나는 울먹거렸다. 여전히 세상이 빙빙 돌고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서서히 시야를 찾아가던 내 눈은 지나치게 가까이 있는 에드윈의 얼굴을 발견했다. 심장이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눈은 그의 얼굴 턱 선을 자세하게 보더니, 그의 붉은 입술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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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 | “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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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 |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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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 | 그와 나의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나는 머리의 아픔도 잊고 당황하여 급히 일어났고 그러는 도중 무릎으로 에드윈의 옆머리를 가격했다. 에드윈은 아픔에 비명을 질렀고 나는 당황함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즉시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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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나는 아주 행복한 기분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 옆에는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에게 팔짱을 끼고 얼굴에는 함박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은 에드윈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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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지나치게 행복했던 기분은 잠에서 깨자 짜증날 정도로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편두통에 인상을 찡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의 거울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황백이 준 도버숲 지도가 있었고 그 위에는 내가 적어놓은 꼬부랑글씨들이 알아볼 수 없게 적혀 있었다. 어제 적어 놓은 것은 그것들 중 가장 알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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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나는 칫솔을 입에 물고 가만히 지도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아니, 에드윈의 아버지를 찾기로 했던 그날부터 나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지도를 보고 도버숲 근처의 마을로 조사를 가고 집으로 돌아와 자고 일어나 지도를 보고 나가고 또 나가고……. 매일 조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하나도 없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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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 우리는 브루노 왕을 찾는 대신 그와 함께 사라진 이름 모를 기사님을 한 분을 찾고 있었다. 브루노 왕의 사진을 주민들에게 들이밀며 물어보면 눈치 빠른 거너릴이 알아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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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하지만 주민들 중, 숲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을 봤다는 사람은 있어도 그게 우리가 찾고 있는 기사님인지는 정확하지 않았고 가끔씩 ‘혼자였다.’ ‘둘이다.’ ‘네명이 넘는 그룹이었다.’ 라고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리고 엎친데 덮쳐 며칠 전 도버숲에 지나치게 이른 폭풍과 허리케인이 찾아와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려 수색 작업에 진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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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에드윈은 며칠 동안의 수색에도 아버지를 찾지 못해서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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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나는 임지영이 에드윈에게 키스를 한 그날부터 그를 만나지 않았다. 얼굴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를 피해 다니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뱃속이 간지럽고 얼굴에 열이 모이는 등의 징후들 때문에 그를 평범하게 대해 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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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나는 입속에 고이고 있는 침과 섞인 치약을 뱉었다. 그러자 방안에서 이어폰의 진동소리가 울렸다.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이어폰은 바람을 타고 바로 내 옆에 둥실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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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나는 칫솔을 입에서 빼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은 김수지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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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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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내 목소리는 방금 자다가 일어났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려는 듯이 거칠고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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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좋은 아침이야. 켄트씨랑 크라운씨가 너한테 할 말이 있데. 그리고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하니 최대한 일찍 우리 집으로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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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 김수지의 명량한 목소리에 잠이 깨었다. 그들이 나를 부르는 이유는 모르지만 그렇지 않아도 김수지에게 가서 어제의 보고를 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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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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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내가 중얼거렸다. 전화가 끊어지자, 나는 급히 양치질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 어제 입었던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그리고 바로 김수지의 방으로 순간이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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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 김수지는 9개의 모니터가 있고 여러 전선들이 있는 정신이 없는 방안에서 모니터들을 재빨리 훑어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뒤에 서서 고개를 슬며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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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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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 내가 말하자, 내가 온 것을 모르고 있던 그는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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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 “왜 그렇게 놀라? 처음 있는 일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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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나는 아주 대수롭지 않게 그의 반응을 무시하고 책상에 걸터앉았다. 모니터에는 펄 마을의 CCTV가 달 별로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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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 “요즘은 이런 식으로 잘 안 나타났잖아. 그리고 밖에서 켄트씨와 크라운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일단 그들과 대화를 하고 다시 와. 그 무서운 인간들이 내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작업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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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 그는 작게 구시렁거렸다. 그는 저번에 그들에게 당했던 일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심어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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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별로 탐탁지 않아하면서 일어났다. 그들과는 그들이 막무가내로 찾아왔던 그날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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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켄트씨와 크라운씨는 김수지의 소파에 나를 기다리며 여유 넘치는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들은 내가 김수지의 집의 대문이 아닌 방문을 열고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지 않았다. 마치 이미 예상한 사람들처럼 나를 바라보았고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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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 나는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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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안녕하세요. 그때 이후로 처음 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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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 일단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기본적인 대화를 해야겠다. 나는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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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 “그때는 우리들 생각만 했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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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 크라운씨는 그때와는 정반대의 표정을 짓고 다정하게 말했다. 오늘의 그의 얼굴은 사납다는 단어 그 자체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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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아. 네. 당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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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 내가 거짓말을 잘한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 번 고맙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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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 “오늘 저희가 셀레스틴양을 뵙기를 원했던 것은 중요한건 아닙니다만, 셀레스틴양의 신상정보를 전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아주세요. 우리는 그저 확실한 것을 원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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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 켄트씨는 전혀 내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서 살피는 척 말했다. 그들이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을 보니 신분세탁을 5번이나 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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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 “저는 켄트씨의 친구로 추정이 되는 서도영 즉, 베르디 사장의 서녀인 서유라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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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 어차피 아버지를 찾아 갔었고 이제는 굳이 신분을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순순히 말해주었다. 아버지의 말씀과 그들은 나를 배신 할 수는 있어도 에드윈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내가 말하는데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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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 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크라운씨는 흥미롭다는 표정이었고 켄트씨는 놀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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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 “그러면……. 네가… 그때 10년 전에 왕의 성에 왔었던 그 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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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 켄트씨는 얼마나 놀랐는지 경어를 사용하는 것도 있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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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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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나의 기억에 따르면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왕의 성에 간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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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 “저는 왕의 성에 간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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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 “정말로 확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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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 크라운씨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서로 알 수 없는 미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것에 집착하고 나에게 묻는지 몰랐지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고 께름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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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 “제가 꼭 왕의 성에 갔었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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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 나는 슬슬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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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 “아니요. 그저 몇 가지 확인할게 있었을 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글로스터는 자식을 혼자 나와 살게 할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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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 켄트씨는 다시 본래의 말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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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 “뭐. 제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시하고 나왔으니까요. 저는 그렇게 좋은 딸은 아니지요. 그리고 저의 가출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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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새삼 다시 아버지에게 많이 죄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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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 “아. 그렇게 된 거였군요. 이제 저희의 의문은 다 풀렸습니다. 그런데 마을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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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해서 뭐라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확실한 건 브루노 왕은 마을 쪽으로는 오시지 않은 것 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주에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보고 나서 확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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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 말할 것도 없어서 말하는 내가 다 민망해졌다. 말을 끝내고 나는 어색하게 두 번 정도 기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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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 “알겠습니다. 자세한건 나중에 다시 상의하지요. 그런데 한 가지만 더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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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 켄트씨가 정중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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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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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 “에드윈 왕자님과는 어떤 사이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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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 만약 내가 그 질문을 들을 때 물을 먹고 있었으면 아마도 나는 사레 들렸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단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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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 “친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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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 “정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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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 크라운씨가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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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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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 나는 아까보다 더 확신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친구라는 게 어딘지 모르게 내 마음을 시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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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 “알겠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또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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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 켄트씨와 크라운씨는 소파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김수지의 집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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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 나는 그들을 따라 소파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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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 그들은 과연 무엇을 확신하고 싶어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김수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육포를 아그작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십고 있었다. 그런 소리가 입속에서 난다는 게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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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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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 김수지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나는 의자를 끌고 와 그의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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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 “그냥 중요한건 없었어. 내 이름과 에드윈과의 사이를 물었지. 그나저나 너는 브루노 왕을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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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 경험상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그냥 머릿속에서 지우는 게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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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 “아니. 찾았으면 내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지. 내가 몇 개월 치 CCTV를 보고 있는데 보이는 거라곤 사람과 사람 그리고 폭풍우의 바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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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 김수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니터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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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 “CCTV가 고장 나기라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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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 화면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빛의 양만 변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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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 “아니, 8배속으로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폭풍우만 보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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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 얼마나 바람이 많이 불어야 화면이 저렇게 보일 수 있는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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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 “거기서 사람 찾기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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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 그때 아침을 먹지 않은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김수지를 바라보았고 그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육포 봉지를 숨기려고 했다. 나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꽉 잡고 있는 그의 육포 봉지를 강제로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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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 “아. 내 육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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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 김수지는 육포가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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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 “에드윈은 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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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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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 나는 육포를 잘근 잘근 씹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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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 “에드윈은 좀 어떠냐고. 많이 실망했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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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 김수지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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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 음… 에드윈은 아마도 실망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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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 |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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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 “대답이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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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 “왜 대답을 해주어도 불만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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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 뜻하지 않게 시비조로 묻게 되었다. 그가 단지 에드윈을 염려해서 말했다는 것을 생각하며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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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 “나도 잘은 모르겠어. 요즘 에드윈이랑 대화를 잘 안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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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 목소리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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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 “너희 둘 싸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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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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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 김수지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내 입에서는 말이 툭 튀어나갔다.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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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 “무슨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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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 “아무 일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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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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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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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 “우리는 싸우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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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 내가 피해 다녔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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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 “그러면 왜 대화를 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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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 오늘따라 김수지가 너무 집요했다. 그는 모든 모니터를 일시정지 시켜놓고 나를 대놓고 바라보았다. 윽… 나도 모르겠는 나의 행동을 그에게 설명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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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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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 그가 명령했다. 내가 도망쳐도 계속 묻겠다는 그의 굳은 의자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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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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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 “뭘 모르겠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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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 “내가 왜 에드윈을 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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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 내가 털어놓았다. 나는 다리를 의자 위로 올리고 두 팔로 감싸 안은 후, 고개를 숙여서 무릎 위에 올렸다. 나는 부끄러움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은 내가 김수지를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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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 “…네가 에드윈을 피하고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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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 김수지가 의아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고 내 다리를 바라보고 있는 게 더 현명할 거라고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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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 | “네가 에드윈을 피하고 있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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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 내가 답이 없자, 그가 다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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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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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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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 | “언제부터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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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 나는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서 고개를 들었다. 언제부터라… 내가 화장실에서 넘어졌을 때부터 이다. 그런데 왜 그때부터 그를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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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 “임지영이 에드윈에게 키스했던 그날부터였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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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 | 왜 그날부터 그랬던 걸까? 임지영이랑 에드윈이 사귀는 게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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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 | “옛날부터 알았지만 엄청 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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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 김수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람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위에 있다는 듯이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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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 | “내가 왜 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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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 나는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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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 “잘 생각해봐. 오늘은 에드윈을 피하지 말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주 잘 생각해봐. 이런 건 말이야. 남이 말해주면 안 돼. 네가 스스로 직접 깨달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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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 김수지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모니터를 다시 가동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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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 “그러니까 그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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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 나는 답답함이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뭐에 둔하고 뭘 스스로 깨달아야한다는 건가? 그리고 그는 왜 만면에 기분 나쁜 수준의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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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 “승훈이가 기다리고 있겠어. 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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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 김수지가 혼자서 즐겁다고 싱글벙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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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림자 세계로 들어갔다.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며칠 전에 에드윈이 내 포옹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고 그에게 말했던 때와 똑같이 찜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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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 | 저녁시간이 되었을 무렵 나는 이승훈과 단둘이 펄 마을을 걷고 있었다. 오늘도 그 기사님을 보았다는 사람은 한명도 찾지 못했고 사람들은 하나, 둘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 거리는 한산해 졌다. 주황색과 빨강색을 섞어 놓은 색의 하늘이 점점 남색과 짙은 푸른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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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 “어머님이랑 아버님은 잘 지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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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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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 우리는 수색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펄 마을과 가까운 도버 숲 근처를 걸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걷고 있는 것이지만 거의 산책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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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 | “잘 지내셔. 아무 일도 없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 하지만 내가 브루노 왕을 찾고 다니는 걸 그들이 알게 되면 난리가 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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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 이승훈은 농담 삼아 말했지만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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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 “나도 네가 걱정이야. 네가 안전해야 내가 행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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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 “안전하지는 않지만 심장이 쫄깃해지는 모험을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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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 이승훈이 활기 넘치게 말했다. 그는 이 모험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걱정을 하는 내가 이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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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 “네가 좋다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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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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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 “너 에드윈이랑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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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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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섞이는 지점에서 미세하게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숲 근처라 그런지 상쾌한 바람이 폐 속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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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 “그냥 네 표정이 밝지 않는 게 그랑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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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 “내가 걔랑 사이가 안 좋다고 얼굴에 막 들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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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 | 나는 싫은 티를 팍팍 냈다. 감정이 잘 들어나지 않는 내 얼굴에 에드윈 때문에 감정이 나타난다는 게 싫었다. 그리고 내가 걔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것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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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 “응. 작년에 에드윈이 감기에 걸려서 아플 때는 죽을상을 하고 있었고 재작년에는 그가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네 표정은 장난 아니게 창백했어. 시체가 걸어다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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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 그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술술 말했다. 그는 참 통찰력이 뛰어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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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 “내가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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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에드윈이 다친 건 기억하고 있지만 그때의 내 얼굴과 내 감정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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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 “오늘 다시 에드윈의 얼굴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봐. 네 감정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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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 이승훈은 김수지와 비슷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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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 이승훈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그와 김수지의 말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조언에 따라 에드윈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을 해보려고 했으나, 그가 오는 발소리만 들려도 내 몸은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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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9 | 그 주 내내 나는 그들의 말을 되생각했다. 에드윈과 나 사이에 문제인 것 같고 내가 무언가를 깨달아야하는데 뭘? 도대체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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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 나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브루노 왕을 찾는 일 또한 생각보다 더 어렵게 풀렸다. 8월 달이 되면서 태풍 예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친구들은 이상하게도 지나치게 많이 넘쳐나는 오류들을 처리해달라는 의뢰 때문에 수색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친구들은 우리들처럼 돈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틈틈이 돈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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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 | 오직 나와 에드윈만이 의뢰를 받지 않아 며칠 동안 자유롭게 수색을 했지만 그것도 엄청난 비의 예고에 의해서 강제로 중지 되고 말았다. 심지어 8월의 그림자 세계의 예상 강수량은 내 키를 훌쩍 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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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 다음날 또 다시 무거운 비가 예고되었지만 나는 더 이상 마지막 마을을 둘러보는 것을 미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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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 제스퍼 마을은 하수구가 막히는 사고로 온 거리가 물로 가득했다. 나와 남궁진희는 수영장을 능가하는 거리를 걷는 것을 포기하고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다. 습기에 눅눅해져있던 나는 따뜻하고 상쾌함 마저 느껴지는 식당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비록 옷은 눅눅하고 신발에서는 물이 찍찍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기분은 좋았다. 우리는 젖은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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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 “메뉴는 어떤 걸로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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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 남궁진희가 물었다. 직원은 메뉴판을 건네주고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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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 “네가 보고 골라. 고기면 나는 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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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 | 나는 굳이 메뉴판을 열어 보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남궁진희는 다시 직원을 불러서 주문을 말했다. 그녀는 여자 둘이 먹기에는 조금 많은 양의 음식을 주문했다. 하지만 직원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의 손은 일사불란하게 그의 수첩 위를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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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 갑자기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천둥 번개가 쳤다. 비가 오고 있는데 더 올 거라고 미리 예고하는 것 같았다.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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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 “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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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 남궁진희가 부르자, 나는 창문에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직원은 어느새 그의 자리로 돌아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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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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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 윽, 내 목소리는 무생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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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 | “무슨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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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 남궁진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 안면 근육을 움직여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니, 효과적이지는 않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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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 “질문을 바꿀게 에드윈에게 무슨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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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 “왜 내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문제가 있으면 에드윈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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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 나는 신랄하게 빈정거렸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팔을 올리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잠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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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 “에드윈을 피하는 이유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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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 남궁진희는 내 질문을 무시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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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 “김수지에게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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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 “정확하게 말하면 김수지에게 네가 에드윈을 피하고 있다는 걸 들었고 버건디에게 네가 에드윈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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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 그들이 입이 무거운 줄 알았던 건 내 착각이었나 보다. 나는 얼굴을 감쌌던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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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 |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하고 싶지 않았고 알맞은 타이밍에 직원이 맛있는 냄새가 나는 스테이크를 들고 나타나 고맙게도 우리의 대화는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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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 “에드윈이 요즘 얼마나 의기소침해 하고 있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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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 하지만 그녀는 에드윈에 대한 주제를 여전히 이어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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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 “몰랐어. 대화를 안했으니 알 리가 없지. 마주치지도 않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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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그리고 스테이크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입속에 넣었다. 아침을 먹지 않고 바로 왔기 때문에 고기 한 조각은 입속에서 살살 녹으며 온몸에 활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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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 “한 달 동안 브루노 왕은 찾지 못하고 있고 왕의 생사조차 확신 할 수 없는 지경이야. 그리고 너까지 그를 전력으로 피하니 에드윈이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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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 | 아니, 솔직히 나는 그동안 나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도 신경 쓸 수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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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나의 문제만으로도 너무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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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 | “유라. 그러면 에드윈은? 그에게 위로를 해줄 친구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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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 | 그녀는 부드럽게 달래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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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 “그에게는 아주 좋은 임지영이라는 친구가 있잖아. 안 그래? 여전히 하루에 한 번씩 키스라도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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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 | 임지영을 생각하니 그냥 화가 났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든지 부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나는 그 충동을 고기에 집중 시켰다. 내가 잡은 칼에 스테이크 고기는 잘게 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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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 “그거 때문에 그를 피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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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 | 남궁진희가 물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그녀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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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 “유라, 유라. 오늘 용기를 내서 에드윈이랑 대화를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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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 | “내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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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 | 나는 격렬하게 거부반응을 나타냈다. 그와 마주보고 있는 걸 생각하자, 벌써부터 속이 메슥거렸다. 그리고 왜 하나 같이 조언이라는 조언은 전부 그를 바라보며 잘 생각해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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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 “좋아. 그러면 내가 묻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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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 “할 수 있는 대답이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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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 나는 대답을 하는 게 마치 엄청난 유세라도 되는 것처럼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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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맞으면, 네. 아니면, 아니요로 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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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 | 남궁진희는 내 행동을 무시하고 기자처럼 질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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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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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 일단은 순순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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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 “그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초조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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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 “아마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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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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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 “네. 그런데 이걸 왜 묻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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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 | “그가 눈을 감아도 생각이 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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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 | 그녀는 나의 말을 무참히 무시하고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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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 |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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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 | “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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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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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 | “무엇에 대한 ‘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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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 |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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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 | “그러면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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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 | 남궁진희의 질문은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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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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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 | 남궁진희의 질문에 나는 모두 에드윈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질문을 하기 전까지 에드윈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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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 | “너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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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 | “어째서 그런 결론에 이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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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 | 나는 포크와 칼을 접시 위에 내려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녀의 말을 신뢰하지 못했다. 에드윈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이성에 관한 애정이 아니라 친구에 관한 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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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 “네가 그를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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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7 | “그러니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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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 “이유는 없어. 네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에 이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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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 남궁진희는 계속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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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 나는 답답했다. 아니기 때문에, 아닐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를 사랑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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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 | “유라. 너는 왜 네가 그를 사랑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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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 그녀가 나만큼이나 답답해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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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 |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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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 | “왜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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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 |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일까? 내가 그를 사랑해도 되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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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 |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얼굴로 열이 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장은 뛰고 얼굴은 붉어지고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 더 이상의 생각은 나에게 해로웠다. 나는 다시 칼을 들고 고기를 썰어 말을 하지 못하게 내 입속으로 구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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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 | “그와 대화를 해봐. 대화만이 너희들의 앞날을 맑게 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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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 | 남궁진희가 엄격하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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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 | “생각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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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 | 나는 그녀의 조언을 머릿속에 단단히 새겼지만 곁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는 것처럼 행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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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3 | 나는 남궁진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후 방안에 틀어 박혀서 고민을 했다. 생각은 계속 같은 곳을 빙빙 돌았지만, 결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결론을 부정하고 내 이상한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끝내 이유는 찾지 못했고 그러던 중 잠이 들었다. 내가 깨어난 건 시간을 알 수 없는 한밤중이 되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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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7 | 침대에서 자지 않고 바닥에서 잠을 잔 덕분에 온몸이 뻐근했다. 침대에 올라가서 더 자고 싶었지만 갈증 때문에 심히 괴로워 물을 먹어야만 다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반쯤 잠이든 상태로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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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 | 에드윈은 잠을 자고 있는지 집안은 어두웠고 그의 방문 틈에는 어둠만이 보였다. 집 안에 있는 빛이라고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네온사인의 빛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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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5 | 나는 컵에 물을 따르고 한 번에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물은 미지근했고 에어컨도 틀어놓지 않고 창문도 닫아나서 거실과 주방은 찜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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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 | 더위에 신경질 적으로 목 언저리를 긁으며 눈을 감고 내 방으로 향하던 나는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눈을 뜨며 그 자리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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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3 | 에드윈은 방에서 나오다 나를 보고 문고리에 손을 올리고 멈췄다. 그와 나의 만남은 약 한달 만에 예상치도 않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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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 |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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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 |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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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 나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리고 침묵이 내려앉았는데 무겁고 어색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도 어색한지 내 시선을 피해 바닥을 바라보고 목뒤를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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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 나는 김수지와 이승훈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희미한 빛 속에서도 그의 잘생긴 얼굴은 정확하게 보였다. 남궁진희의 말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그는 많이 수척해져있었다. 아니, 그런데 에드윈에게는 임지영이라고 하는, 그를 언제나 지지해주고 좋아해주는 아이가 있는 데, 그가 왜 마음고생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나지? 내가 그를 좋아하나? 하지만… 오랜 친구이지만 좋아해도 되지 않을 까? 그가 비록 왕자이지만… 내가 좋아해도 되지 않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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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 “내가 널 좋아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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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 머리가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입에서 갑작스럽게 결론이 툭 튀어나왔다. 에드윈이 숙였던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놀람으로 커졌다. 속이 메슥거리고 심장은 뛰었다. 얼굴로 열이 몰려 내가 느끼기에 내 얼굴은 열로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뒤 늦게 내 머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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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면 너는 거너릴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를 받았고, 에드윈이 도와달라는 말에 바로 너는 에드윈에게 크라운씨와 함께 갔다. 그런데 그건 속임수였고 왕과 길이 엇갈려 버렸다. 에드윈과 너와 크라운씨가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때 현실 세계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돌아올 수 없었고 순간이동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을 타고 도망을 쳤고 강 때문에 잠시 멈춘 곳에서 화살이 날아와 말에 맞아, 너는 떨어졌고 너를 에드윈과 크라운씨가 부축할 사이에 크라운씨의 말이 화살을 맞고 숲속으로 혼자 들어가 버리면서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자, 물속으로 뛰어든 다음. 에드윈의 힘으로 현실세계로 넘어왔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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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테이블 위에 놓인 이어폰 속에서 김수지의 속사포처럼 빠른 목소리가 내가 몇 분 전에 겪은 일을 완벽하게 압축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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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맞아. 거너릴의 옴브라들이 능력을 제한할 수 있고 현실 세계로 가는 걸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과 내가 멍청한 것을 알았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도 구별하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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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35 | 나는 소파에 큰 수건으로 온몸을 두르고 앉아있었다. 내 앞에는 따뜻한 차가 놓여 있었고 에드윈과 크라운씨도 나처럼 수건을 두르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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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유라를 비난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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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 에드윈이 나직이 협박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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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 “아니, 비난하지 않을 거야. 황백이 전화해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면 나도 너처럼 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이 속이려고 작정했으면 속을 수밖에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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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 내 옆에서 앉아있는 남궁진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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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 “그건 나도 동의해.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위험해 처했다고 말하면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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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황백이 부엌에서 나오며 동의했다. 그는 가지고 나온 두 개의 컵을 에드윈과 크라운씨 앞에 내려놓았다. 컵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왔다. 에드윈과 크라운씨는 두 손으로 따뜻한 컵을 잡았고 황백은 남궁진희의 뒤편에 가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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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나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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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김수지가 변명조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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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 “그래도 누가 전화를 했는지 확인해 보고 받을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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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나는 자책했다. 전화를 받기 전에 누가 걸었는지 확인했으면 에드윈과 크라운씨를 곤경에 빠트리고 물을 먹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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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음……. 그래도 별 소득은 없었을 거야. 통화 기록을 보니까, 너한테 전화를 건 사람이 에드윈으로 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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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 김수지가 말했다. 거너릴이 아주 주도면밀한 사람인 걸 잠시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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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 “그런데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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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 “내 컴퓨터가 해킹 당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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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 뭐지. 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천연덕스러운 김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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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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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 결국 김수지는 임남매와 나, 에드윈, 크라운씨, 황백과 진희에게 고함소리를 들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김수지는 해커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커가 저렇게 보안 시스템이 엉망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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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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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 에드윈이 거칠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소리 나게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눈동자는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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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 “정확하게 언제 해킹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에 발견했어.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집 위치와 전화번호부만 해킹 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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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 “미리 말해 주었으면 조심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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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황백이 비딱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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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 “너희들 전부의 전화번호를 바꾸느라 전화할 틈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하필 가장 나중에 바꾼 유라와 에드윈의 핸드폰 번호를 가지고 그렇게 장난칠지 내가 어떻게 아냐? 또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켄트씨와 계속 통화해야하고 정말 짜증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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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 김수지도 나름 바빴고 예방을 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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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 “그래.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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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크라운씨가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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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김수지를 탓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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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 “그나저나 왕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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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 김수지가 화가 났다는 표시로 씩씩 거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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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 나는 에드윈의 방문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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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 무사히 그림자 세계에서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왕은 에드윈의 방안 침대 위에 밀랍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고 켄트씨는 그런 그의 건강을 체크 중이였다.(왕이 깨어나지 않는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왕의 곁에 끝까지 남아서 그를 지켰던 기사는 지금도 여전히 그의 옆에서 밀착 경호를 하면서 브루노 왕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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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 “나도 자세하게는 잘 몰라. 켄트씨가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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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 에드윈이 나지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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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 “그런데 켄트씨가 의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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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 김수지가 매우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나는 켄트씨의 진짜 직업이 과연 무엇인지 정말로 궁금했다. 책사였다가, 의사였다가 편리하게도 계속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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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 “응. 그는 사람이 어디가 아프고 무슨 병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신비한 눈을 가지고 있어. 그의 눈은 웬만한 CT나 엑스레이 보다 더 정확해. 하지만 그게 능력인지는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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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 에드윈이 설명했다. 능력이라는 건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광활하고 다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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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 “왕은 어떻게 찾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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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 임지영이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부엌과 거실의 중간 지점에 서서 거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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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 나는 에드윈을 바라보며 차를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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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 “나는 도버 숲에 낡은 오두막이 있다는 소식을 켄트씨에게 듣고 바로 오두막으로 향했어. 때마침 식량과 땔감을 구해오던 블라디미르 경을 만났지.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우연이야. 그곳에서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찾았고 우리는 그를 막사로 옮겨왔어. 그런데 우리가 아버지를 찾은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거너릴의 군대가 우리 쪽으로 오더군. 49명의 기사들에게 나중에 만나자고 말한 뒤 그들을 현실세계로 돌려보냈고 나머지는 너희들이 아는 그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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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 에드윈이 힘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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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 왕을 지킨 기사의 이름이 블라디미르라는 것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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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 “기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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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 김수지가 물었다. 에드윈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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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 “기사들 문제는 켄트씨와 상의해봐야 할 것 같아. 거너릴이 그들을 쫓고 있으니 다시 모아야 할 것 같지만…….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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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의식할 시간도 없이 자동 적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방에서 나오는 켄트씨와 블라디미르씨의 표정은 나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왕의 건강이 매우 나쁨은 아닌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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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 “앉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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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 켄트씨가 긴장을 하고 일어난 우리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제야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일어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임 남매는 주방에서 나와 비어있는 소파에 앉았는데 그들이 왜 자꾸 부엌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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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 “아버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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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 켄트씨와 블라디미르씨가 소파에 앉자, 에드윈이 초조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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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 “폐하께서는 거너릴과 헬리아님 때문에 충격을 받으셔서 정신분열증과 치매에 걸리셨고 오랜 야외 생활로 기력이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치료를 받으시면 분명히 나으실 겁니다. 제가 낫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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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 켄트씨가 믿음직스럽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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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 “그런데 왜 아버지께서는 깨어나지 않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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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 질문을 하는 에드윈의 얼굴이 괴로운 듯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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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 “열병과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폐하의 의지 때문에 지금 잠들어 계십니다. 하지만 왕자님께서 옆에 계시면 분명히 일어나려고 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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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 “아버지의 잃어버린 정신을 제발 찾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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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 “그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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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 에드윈은 켄트씨의 자신 있는 말에 안심을 하고 블라디미르씨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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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 “블라디미르 경 아버지를 지켜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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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 에드윈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이자, 블라디미르씨는 당황하며 같이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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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 “아닙니다, 왕자님. 저는 저의 임무를 다한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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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 블라디미르씨가 급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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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 “실례가 아니라면 왕의 성에서 나온 뒤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들을 수 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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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 에드윈의 정중한 부탁에 블라디미르씨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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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 “네, 당연하지요. 어, 저는 왕께서 습격을 받으실 때 그의 가장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도버 숲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거너릴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왕에게 거너릴 군대가 쏜 수많은 화살은 엄청난 행운으로 전부 말에게 박혔습니다. 왕께서는 말에서 떨어지셨고 저는 왕을 저의 말에 태우고 도버 숲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숲속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며 엄청난 바람이 불었습니다. 켄트씨와 크라운씨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핸드폰은 모두 고장 나서 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숲을 돌아다니다가 작은 오두막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왕과 함께 비를 피했습니다. 왕께서는 거너릴이 동생의 목숨으로 협박한 것도 모자라 그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에 크게 분노하고 슬퍼하셨습니다. 그는 오두막 밖으로 나가서 비를 맞으며 죽으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가까스로 말리고 오두막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현실 세계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켄트씨와 길이 엇갈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비바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켄트씨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비는 멈췄지만 켄트씨가 오시지 않아서 저와 왕은 오두막 안에 있는 나무로 불을 피우고 잠깐 비가 멈출 때면 도버숲을 날아다니는 새를 잡아먹거나 나무뿌리를 먹으며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왕자님을 만나게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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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 블라디미르씨가 가슴을 펴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왕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던 것을 굉장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의 충성심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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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 “충성심이 남다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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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 김수지가 박수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의 칭찬에 블라디미르씨의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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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 “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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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 “그러면 이제 뭘 어떻게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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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 김수지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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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 “일단은 먼저 흩어져 있는 기사들을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흩어져 있으면 거너릴이 언제 그들을 공격할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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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 켄트씨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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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 “흩어져 있던 기사라면 100명 전부를 말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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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 에드윈이 턱 위에 손을 올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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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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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 “그 정도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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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 “있을 것 같아. 비록 좀 더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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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 김수지의 물음에 켄트씨나, 에드윈이 아닌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곧 바로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모두의 시선이(심지어 나를 싫어해서 바라보지 않는 임지영도)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나는 시선을 그렇게 많이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워서 얼굴로 열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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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 “어, 어.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위층이랑, 너무 커서 막아 놓은 다른 방을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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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 | 나는 말을 더듬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결국에는 도와달라는 듯이 에드윈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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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 | “맞아요. 우리 집은 넓어요. 적어도 100명의 잠자리는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집에서 사는 게 더 낫지 않을 까요? 이곳으로 오면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들이 좋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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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 에드윈이 말하자, 다행히도 시선은 다시 그에게로 몰렸다. 후. 깜짝 놀랐다. 연설이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내 체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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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 “왕을 위해 살고 왕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자들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저는 기사들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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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 | 블라디미스씨가 신나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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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 기사들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이 몇 명씩 나눠서 우리의 집으로 왔다.(내가 그 이유에 대해서 블라디미르씨에게 물어봤을 때 그는 기사 교육을 받은 사람은 당연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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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 그때 마다 경고장치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울려대었다. 시끄럽기는 했지만 장치가 고장 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아주 큰 수확이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도 10일 쯤 지나자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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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 왜냐하면 그때쯤 기사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은 집에 오자마자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두껍에 생긴 2층과 부엌 옆에 벽으로 막아 놓은 방을 청소했다. 그들이 청소할 때 나는 그들에게 너무 미안해지고 민망했다.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만인에게 알려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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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 | 우리 집은 새로 늘어난 식구들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화장실도 내가 수영장을 만들고 싶다는 몇 년 전의 어리석은 생각의해 만들어진 2층의 수영장 크기의 욕실이 대체했다. 그리고 2층과 1층의 새로 생긴 공간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가구와 운동기구를 배치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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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그건 바로 식량이었다. 우리 집에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의복은 그런대로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다.) 갑자기 대량 구매를 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다른 사람들이 나가 식량을 조금씩 사와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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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음식을 잘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심지어 기사들도 먹을 수만 있는 정도의 음식을 만들어 냈다.) 결국 우리는 며칠 동안 나름 요리를 하는 임남매가 주는 어중간한 맛의 음식을 먹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스꺼움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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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 임 남매의 요리 실력에 참다못한 몇몇 기사들이 요리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들은 거부 했다. 요리는 그들의 특권이라는 어이없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런데 임 남매가 사용하는 주방의 주인인 나는 누구에게도 그런 특권을 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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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 그리고 왕의 상태는 느리지만 분명히 호전되고 있었다. 그는 며칠 사이에 혈색이 돌고 열이 내렸으며 시간이 좀 흐르자 미세하게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했다. 켄트씨의 말로는 그가 곧 깨어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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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 우리는 왕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어떤 행동도 하지 않기로 했다. 거너릴은 우리가 움직이는 이유에 하나, 하나 집요하게 이상한 이유를 달아서 그 명분으로 우리를 괴롭힐 수 있고 무엇보다 위험해 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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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 덕분에 우리는 밖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 거의 매일 TV뉴스를 보며 은둔자 생활을 했다. 유일하게 김수지만이 그림자 세계와 현실 세계를 우리에게 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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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 “거너릴이 에드윈은 왕을 납치한 자라고 공포했어. 이제 에드윈은 합법적인 범죄자가 되었어. 현상금도 있군. 오우. 현상금이 아주 높아. 사람을 3명 죽이고 튄 놈보다 더한 현상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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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 김수지의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가 옥상 정원에 앉아있는 나의 손목에서 생생하게 들렸다. 내 이어폰이 고장이 났기 때문에 이런 방법으로 밖에 전화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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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 “아주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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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 에드윈이 비딱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켄트씨와 브루노 왕의 간호를 교대하고 옥상에 새로 가져다 놓은 소파에 내 다리를 베고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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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 기사들이 오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었는데 좋은 점은 내가 집안일을 할 필요 없다는 것이고 집이 북적거려서 사람이 사는 곳 같다는 것과 2층이 새집처럼 깨끗해 졌다는 것이었다. 나쁜 점은 그들이 나를 ‘공주’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괜히 부담이 되며 긴장하게 되었고, 모든 말과 행동에 조심하게 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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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 높은 사람이 되는 건 정말로 피곤한 일이었다. 어디를 가든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는 기분이었고 사람이 너무 많아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점도 불편했다. 내 방은 임지영과 남궁진희 그리고 다른 여성 기사들과 함께 사용하여 더 이상 나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고 에드윈의 방은 왕과 켄트씨가 있었기 때문에 내 방과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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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 | 우리가 부담감 없이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곳은 이제 옥상 정원이 유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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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 | “오늘 밤에 네 현상금 소식이 특보로 뉴스에 방송 될 거야. 그리고 내일 밤쯤에 거너릴의 공식 연설이 있을 예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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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 “난 범죄자가 되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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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 에드윈이 가소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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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 | “사실을 알고 있는 옴브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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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 | 내가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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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그때 광장에 모였던 옴브라들의 일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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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 | “문제는 그때 모인 그 옴브라들도 움직이지 않는 다는 거지. 덕분에 나는 정보만 수집 중이야. 그리고 이 정보들을 너의 컴퓨터에도 전송을 할 테니까 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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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 | 김수지가 벌써부터 자판기를 두드리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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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 | “그런데 수지야. 꼭 거기서 지내야 하는 거야? 우리 집에 와서 지내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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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 나는 안전한 우리 집에 오지 않으려는 김수지를 다시 설득하려고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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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 |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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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 | 김수지가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설득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거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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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 나는 비딱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내가 거너릴의 사기 전화에 속아서 에드윈과 크라운씨를 위험에 빠트렸던 때처럼 그가 다칠 까봐 두려웠다. 그는 가끔씩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나지만 굉장히 소중하고 유용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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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 | 그런 그가 그냥 무시하는 것이 있었는데 거너릴이 그의 집 주소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김수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니, 내가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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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 “내일 밤 6시쯤에 너희 집으로 갈게. 너희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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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 김수지가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나는 귀찮게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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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 “오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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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 나는 악 감정을 가지고 콧방귀를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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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 |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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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 에드윈이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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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 |
534 |
535 | “내일 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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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 그리고 김수지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정말로 전화 예절 따위는 버린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파란 물감을 타놓고 그 위에 흰 물감을 연하게 짜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고 색이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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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 “유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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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 | 에드윈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닿자, 얼굴로 열이 모이는 건 당연한 일이였고 배속이 간지러워졌다. 나는 고개를 내려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전히 그의 작은 스킨십에 당황했다. 도저히 이건 익숙해 질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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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 |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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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 심장이 너무 빠르고 크게 뛰어 그 소리가 그에게 들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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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 | “그냥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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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 에드윈이 중얼거렸다. 나는 손을 움직여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의 머릿결에서 상쾌한 비누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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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 | “너는 참 이상한 것 같아. 나 때문에 강에 빠지고 말 타고 빗속을 달렸는데도 나한테 고맙다는 말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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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 |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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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5 | 그가 후후 거리며 웃었다. 피곤해서 그런지 그의 목소리는 탁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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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 “그리고 나보다는 네가 더 다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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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 그는 말에서 떨어진 덕분에 보호대를 하고 있는 내 팔을 그의 손으로 들어올렸다. 내 팔은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근육이 놀랐다는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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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 “곧 보호대를 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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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 | 나는 그의 손에서 내 손을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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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 | “2주일 뒤에 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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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9 | 그가 신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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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무리하지 마. 브루노 왕이 깨어나기 전에 네가 쓰러지면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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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 | 나는 그의 볼에 손등을 문질렀다. 보들보들한 느낌이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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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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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 그가 피식 웃었다. 그는 손을 올려 그의 볼 위에 있는 내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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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 | “이제 그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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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 | 나는 작게 속삭였다. 이제 그만 그가 잠들 수 있게 해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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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 “내가 자기 싫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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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 | 그는 오랜만에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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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 “어떻게 하면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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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9 | 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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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 |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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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 | …너무 졸려서 뇌가 마비가 된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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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 “내가 노래에 재능이 최악이라는 것을 깜박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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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네 목소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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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 그는 나를 웃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지는 않을 것이다. 내 노래 실력은 내 귀까지 멀어버리게 만들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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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 나는 고개를 숙여 그의 입에 짧게 입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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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 “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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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 | 내가 고개를 들고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의 눈은 놀람에서 기쁨으로 활처럼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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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안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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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 그가 조금은 과장을 하며 그의 심장 위에 손을 올렸다. 나는 눈알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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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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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 “알겠으니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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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 에드윈은 믿지 않는 나를 보며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결심한 듯이 그가 잡고 있던 내 손을 그의 심장 위에 올려 두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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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5 | “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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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 나는 당황해서 그를 불렀다. 그는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눈빛으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지는 셈 치고 가만히 있었다. 손바닥과 손끝을 타고 그의 온기와 빠르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나의 심장 방동수와 거의 똑같은 박자로 빠르고 힘차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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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 | “내가 비록 감정이 잘 들어나지 않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심장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못해. 나는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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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 그가 말했다. 그의 심장은 쉴 틈 없이 빠르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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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 | “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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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 나는 속삭이고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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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 잠시 후 푸른 하늘 아래, 상쾌한 바람 아래 에드윈의 숨소리가 깊고 규칙적으로 바꿨다. 나는 잠이든 에드윈이 깨지 않게 조심히 움직여 그에게 담요를 덮어 주고 아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황백과 임지영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질퍽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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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 오늘 점심도 썩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거실과 기사들이 있는 방에서는 TV소리와 기사들이 훈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하루라도 훈련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는 지 내 집에 훈련장을 만들어 버렸다. 한편 크라운씨는 소파 위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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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 내가 에드윈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있는 켄트씨가 침대 옆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미관상 좋지 않은 붉은 핏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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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 | “이제 제가. 음. 왕을 간호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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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 나는 브루노 왕의 호칭 때문에 망설이며 말했다. 에드윈과 함께 있을 때는 아무렇게나 불러도 괜찮았지만 어쩐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다른 호칭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호칭을 사용해도 다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호칭에 부담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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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3 | “예.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막 눈이 감기려고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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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 켄트씨는 내가 신경 쓰는 호칭에서는 아무 신경도 주지 않고 활짝 웃었다. 그의 눈 밑에 진한 검은 그림자가 나를 반갑게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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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 켄트씨가 나가고 나는 침대 옆에 앉았다. 브루노 왕의 얼굴은 평범하게 자는 사람처럼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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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 | 나는 브루노 왕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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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 | “아저씨. 빨리 일어나서 에드윈의 고통을 줄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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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 |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하루빨리 그가 일어나 에드윈의 얼굴에 근심이 사라지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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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 | 뻐근한 목과 허리 통증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깼다. 눈은 아직도 피곤함을 호소하며 뜨려고 하지 않았다. 억지로 눈꺼풀을 올린 나는 내 등에 묵직한 담요가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에드윈이 나에게 덮어 준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에드윈이 내 옆에 침대에 등을 기대고 자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나의 얼굴에는 감추지 못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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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 | 나는 왕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왕이 누워있는 모습은 묘하게 어제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그대로 일어났다. 자세히 보자, 왕의 눈꺼풀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눈을 뜨려고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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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 “에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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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 | 내가 왕의 손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는 눈을 번쩍 뜨더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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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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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 | 그의 목소리는 피곤으로 인해 거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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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1 |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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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 | 그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내가 그를 부른 이유를 알았다. 그가 부르자, 왕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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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 | “켄트씨를 불러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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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 | 내가 말했다. 에드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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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 | 나는 급히 방을 나왔다. 집안은 익숙하지 않은 적막에 싸여 있었다. 소파에서 자는 크라운씨와 켄트씨를 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크라운씨와 함께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는 켄트씨의 어깨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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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 | “켄트씨, 켄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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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 내가 매우 조심스럽게 불렀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는 경기를 일으키듯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놀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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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 | “네, 공주님 무슨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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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3 | 그의 목소리는 갑자기 깨서 그런지 매우 컸다. 그의 목소리에 크라운씨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도 눈을 떴다. 그는 부스스한 눈동자로 나와 켄트씨를 바라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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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 “왕께서 깨어나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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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 내가 말했다. 그러자 켄트씨는 즉각 일어나 에드윈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켄트씨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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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 |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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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 아침 햇살보다 더 희망찬 에드윈의 목소리가 내 기분까지 좋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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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 | “에드윈, 내 아들 에드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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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 | 왕은 눈을 뜨고 침대에 일어나 앉아, 에드윈을 바라보며 감격스러워했다. 에드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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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 | “폐하,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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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 | 켄트씨가 왕의 옆으로 와서 물었다. 그는 지금 그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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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9 | “나의 오랜 친구 켄트 리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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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 | 어느새 켄트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정말로 왕의 충신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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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 | “저는, 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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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 | 에드윈이 물었다. 왕은 분명히 그를 알아보았지만 에드윈은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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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 | “나의 아들이자 그림자 왕국의 유일한 후계자 에드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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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 | 왕이 다정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그가 얼마나 에드윈을 아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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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 | “그리고 서도영의 딸인 서유라양. 왜 그렇게 멀리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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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 | 브루노 왕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질적으로 그와 나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에드윈은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고 왕의 옆으로 이끌었다. 그의 얼굴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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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 | “몸은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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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5 | 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에드윈의 행복한 얼굴을 보니, 그런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격스럽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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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 | “그래. 다시 태어난 기분이구나. 몸이 아주 가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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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 왕은 농담을 하며 미소 지었다. 에드윈의 아름다운 얼굴이 누구를 닮았는지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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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 기사들은 왕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 집은 순식간에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했다. 맛없는 식사도 맛있게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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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5 |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차를 탈 물을 끓였다. 내 옆에서는 남궁진희와 블라디미르씨와 이름 모를 한 기사가 접시를 닦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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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 “집사가 된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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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3 | 내가 물을 찻잔에 따르며 남궁진희에게만 들리게 작게 말했다. 그녀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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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 | “집사보다는 안주인에 가깝지. 에드윈의 부인이라도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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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1 | 그녀가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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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5 | “어머. 그러면 내가 리어 부인이 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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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9 | 내가 점잔을 빼며 말했다. 생각만 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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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 | “어서 차를 가지고 들어가기나 하세요. 리어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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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 | 남궁진희가 찻잔이 네 개를 쟁판에 올려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눈알을 굴리고 쟁반을 들고 방으로 향했다. 내가 들기 보다는 바람이 알아서 운송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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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 | 방 안에서는 브루노 왕에게 켄트씨와 에드윈이 거너릴의 악행과 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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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5 | “거너릴이 그렇게 까지 할 줄은 몰랐구나. 헬리아에게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빌리에게 그렇게 이용당할 줄은 몰랐구나. 너나 그 아이들이나 전부 같은 어미의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찌나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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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9 | 왕이 안타까움에 얼굴을 숙였다. 그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담담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에드윈이 그의 옆에 든든하게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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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3 | “저도 그들과 다르지 않아요. 헬리아 누나처럼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에서 도망쳤지요. 상황이 달랐다면 제가 거너릴이 될 수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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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7 | 에드윈은 끝까지 자신의 형제, 자매들을 감쌌다. 그의 인성에 감탄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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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1 | 나는 그들에게 차를 건네주고 에드윈의 옆이자, 침대 옆 바닥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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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5 | “네가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정말로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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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 | 브루노 왕이 에드윈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는 왕도 기업의 주인도 아닌 그저 에드윈의 아버지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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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3 | “제가 살아남은 건 유라의 공이에요. 저를 지켜주고 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 있어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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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 | 에드윈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보지 않아도 내 두 볼은 붉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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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 | “유라는 나의 목숨도 살려 주었단다. 내가 잠든 사이에 했던 그녀가 했던 말이 내가 일어나야하는 이유가 되어 주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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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 브루노 왕이 통쾌하게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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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뜨거워져서 아무 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웃는 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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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 “폐하. 이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김수지군의 말에 따르면 거너릴이 왕의 성으로 그의 군대와 헬리아 공주님의 군대를 집결 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에드윈 왕자님을 반역자로 만들었고 왕께서 반역자인 에드윈 왕자님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참고로 김수지 군은 훌륭한 해커로 옴브라가 아닌 일반 사람이고, 에드윈 왕자님과 유라 공주님의 친구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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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 켄트씨가 주제를 바꿔 진지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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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 나는 김수지의 이야기에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보았다. 오후 8시였다. 그가 오기로 했던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뱃속이 이상하게 요동치며 불안감이 엄습했다. 김수지와 친구였던 수년간 그가 시간 약속을 어긴 적은 한 번도 없었었다. 그리고 내 불안감이 틀린 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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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 “김수지군이 곧 병사들의 분포도를 가지고 온다고 했으니 자세한 건 그때 다시 상의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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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 켄트씨의 목소리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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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불안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어색하게 웃을 때 나는 에드윈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단박에 내가 다른 생각 중이고 불안해 한다는 것을 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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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 에드윈과 나는 시선을 교환하고 방을 빠져 나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우리 만 있게 되자, 나의 불안감이 폭발했다.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름답게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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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 “이상해. 김수지가 약속을 어길 리 없어. 그리고 이렇게 늦었는데 연락도 주지 않는 게 너무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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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5 | “나도 이상하게 생각해.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으면 그가 먼저 연락을 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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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 | 에드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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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3 | 나는 답답했다. 김수지가 지금 생사의 위기에 놓여 있을 수도 있는 데 여기서 이렇게 평안하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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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 | “나는, 나는 잘 모르겠어. 전화할 수 없는 상황에 그가 처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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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 | 말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에드윈은 나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의 품에서 불안감으로 불규칙하던 내 심장박동 수가 진정이 되고 규칙성을 찾아갔다. 그는 내 머리카락에 고개를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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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 |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가지 못해. 아니, 안 돼. 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내일 날이 밝으면 그때 가자. 지금은 너무 늦었어. 김수지는 적어도 자신의 몸을 지킬 줄은 알아. 너무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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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9 | 에드윈이 달래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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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3 | “김수지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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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7 | 내가 중얼거렸다. 나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불안감은 피로까지 잊게 만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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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 | “내일 아침 일찍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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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 | 에드윈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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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9 | “그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없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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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 | 나는 에드윈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평온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 역시 김수지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안심을 주기 위해 평온한척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김수지의 집에 갈 수 없었다. 지금은 밤이고 우리 모두 너무 지쳐 있었다. 나는 에드윈의 품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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